|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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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암사 남쪽 300m 지점에 위치한 수바위는 화암사 창건자인 진표율사를 비롯한 이 절의 역대스님들이 수도장으로 사용해 왔던 곳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수바위는 계란 모양의 바위 위에 왕관 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이 바위 윗면에 길이 1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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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곡대사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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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는 신라 때 서곡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서곡대사가 절터를 보면서 계란을 묻어 닭이 울어야 명당이라고 했는데, 밤중에 계란을 묻었더니 과연 새벽에 닭 두 마리가 홰를 치면서 울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쌍계사(雙鷄寺)로 이름 지었다가 43년 전 서울 수정사에서 온 강월하스님이 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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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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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한 근거는 없으나, 1246년(신라 경덕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하며, 풍수설에 따라 비봉포란이란 혈을 정하여 불상안좌의 터를 닦았다하며, 예부터 명차가 소산되므로 사명을 향림이라 하였고, 불계에서 즐기는 작설차를 산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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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만의 사랑과 원한(사랑과 한을 간직한 수도암) |
| 고흥군 수도암 입구 괴목
하루만의 사랑과 원한(사랑과 한을 간직한 수도암) 홍 총각의 정처 없는 발길은 전라도 고흥 땅에 이르렀다.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은 수려했지만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차에 걸쳐 과거를 보았지만 불행히도 낙방만 되어 벼슬길을 놓치고 있는 터라 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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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의 고개 귀활재 |
| 옴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둘다 고개로 통한다. 광주에서 올 때면 월출산 풀재를 지나 청풍저수지 머리맡에서 좌회전하여 돈밭재(錢田峙)를 넘는 길과 병영에서 갈 때면 지방도로 835호선을 타고 귀활재를 넘는 길이 그것이다. 필자는 항상 옴천에 갈 때면 병영에서 귀활재를 넘는 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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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명혈 이야기 |
| 옴천은 명당이 많은 땅이다. 산천 어느 곳인들 풍수지리와 얽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나, 그 중 예로부터 전하는 2개의 명혈(名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먼저 "돈밭재 아래 1마장 거리 길가에 천하게 버려져 있는 땅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쓰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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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이름 바뀐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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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이름이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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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사 창건과 아홉 마리의 용 |
| 아득한 옛날이라고 할 천삼백년 전의 일이다. 메마른 품이 학같은 늙은 스님 한 분이 원주지방에 찾아와 절자리를 두루 고르고 있다가 관서의 거산 치악산을 향해 떠났다.이 스님의 이름은 무착대사라고도 하고 의상조사라고도 하나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원주서 치악산을 향해 육십여리 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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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구(九) 대신 거북구(龜)자를 쓰게 된 사연 |
| 지금 아홉구(九) 대신 거북구(龜)자를 쓰게 된 연유는 본래 구룡사는 스님들의 수양도장으로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을 두고 흥망성쇠에 따른 곡절이 많았다.조선시대 들어서면서 치악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대부분 궁중에서 쓰게 되어 구룡사 주지스님이 공납의 책임자 역할까지 하게 되었고 좋거나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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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천사지 폐사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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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축 2리(원방축) 마을 뒤에는 '방축리 성터' 를 끼고 여염리 '성두(성머리)' 마을이 있다. 또 마을 앞에는 봉미산이 있는데 이 곳 기슭에는 고려시대 창건되었다는 방축리 사지(현 서천사)가 있다. 절이 보유한 기록에 의하면 서천사는 1352년 나옹화상 창건하였으며, 조선이 건국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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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덕면 방축리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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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축리 지명은 방죽말에서 왔는데 그 방죽은 알고 보니 '논 방죽(소시랑골)')활딱지처럼 소시랑골도 재미있는 지명이다. 이 곳은 고려시대 시랑벼슬을 했던 소(蘇)씨가 처음 터를 잡은 마을이어서 '소시랑골' 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온다.고려때의 시랑은 광평성의 경우 시중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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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야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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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전해오는 설화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사찰이 부서지면서 주지 스님이 쓰던 대야가 이 부처물에 묻혔는데 그 후 비가 와서 물이 넘칠 때면 대야 우는 소리가 인근에 널리 울려 퍼졌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그때의 옛 사찰에 모셔있던 불상이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월영사 외곽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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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당암 창건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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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당암의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의운스님이 도솔산 법화굴(法花窟)에 살고 있을 때 산 아래 죽포 포구에 돌배 한척이 들어왔다. 이 배는 속인들이 보려고 다가가면 바다로 멀어지곤 하다가, 의운스님이 제자들을 이끌고 포구로 나가서야 저절로 다가왔다. 이윽고 배에서 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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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암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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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은 신라말의 국사로 영암출신이다. 그는 유명한 절터를 정한것이 많다고 하는데 유산기(遊山記)에 따르면 운동산(雲動山)은 복호형(伏虎形) 즉 엎드린 호랑이 형세라 호랑이 입에 해당한곳에 암자를 세우고 경쇠를 울리면 호랑이의 침해를 막을수 있다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워 중으로 하여금 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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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명산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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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안읍 성암리 도덕사는 오래된 사찰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많다. 60년 전 성우 큰 스님이 승달산에서 참선하고 돌아가던 중 풍광이 좋은 도덕사에 들러 정진하다 소가 우는 소리를 듣고‘확철대오’라는 깨달음을 받아 사찰 뒤의 산을‘우명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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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건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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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를 품고 있는 천봉산(天鳳山)은 해발 609m 로 보성, 화순, 순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원사는 503년(백제 무녕왕 3년)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경상북도 선산군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던 아도화상은 하룻밤 꿈속에 봉황이 나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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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동자의 출현과 세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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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세조 10년 2월에 세조는 어가를 속리산 복천사에 옮겼다.신미(信眉), 사지(斯智), 학열(學悅), 학조(學祖) 등이 행행길에 마중하여 복천사행재소에서 대왕을 시봉하였다. 위로는 종훈(宗勳)에서부터 의정부와 육조의 백료들이 호종하였으니 속리산 복천사에 조정을 배판한 형국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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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도령과 처녀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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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충숙왕 때에 글재주가 좋기로 소문난 18세의 황도령이 황간 동헌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석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백일장에서는 물‘水’자와 뫼‘山’자를 몰라 낙방하고 말았다.이에 크게 상심한 황도령은 그 길로 황간 반야사를 찾았다.그는 이곳에서 학식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일우스님께 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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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계정심선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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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불교가 탄압을 당할 때 벽계정심 선사는 머리를 기르고 속인 같이 지내기 위해서 과부를 얻어 사는데 부인은 1년을 살아도 과부요, 2년 3년을 살아도 이름만 영감이지 언제나 남남이었다.그래서 하루는“스님, 저는 갈랍니다.”“왜?”“이름만 영감이지 저는 항상 과부 신세를 면치 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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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대사 주장자와 배롱나무 |
| 영동 반야사 배롱나무
반야사 경내 극락전 앞에 있는 배롱나무는 조선 건국 당시 무학대사가 주장자를 꽂아 둔 것이 둘로 쪼개져서 쌍배롱나무로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출처 : 반야사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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