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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산 유래
사찰명 : 연화사 전화번호 : 043-231-3807
소재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성보문화재 : 4 개
부모산 유래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장군은 복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탈환하고 아양산마저 탈환해 7백여명의 의병과 함께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아양산에 물이 없다는 것을 안 왜장은 포위를 굳게 해서 식량과 물의 공급을 완전히 막았다.

보름을 지나자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고 박춘무장군도 의식을 잃어 어느 산기슭 큰 소나무 밑에 쓰러지고 말았다. 꿈결에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노인을 만났는데 지팡이로 박춘무장군의 머리맡에 있는 소나무를 가리켰다.

정신을 차린 박춘무장군은 부하들에게 소나무를 뽑게 했고 그 자리에서는 콸콸 물이 솟구쳐 흘렀다. 물의 양이 많아 식수로 충분한 것은 물론 말을 목욕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물의 공급을 막으려던 왜군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고 포위를 풀고 북쪽으로 빠져 나갔다고 한다.

박춘무장군은 이 우물을 어머니의 젖에 비유해 모유정이라고 이름지었으며, 이때부터 아양산이 부모산이 됐다는 것이다. 비록 물은 말랐지만 모유정의 흔적은 부모산 정상에 아직도 뚜렷하다. 깊이가 260㎝나 되는데 모유정에 실꾸러미를 풀어 넣으니 까치내로 나왔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밖에 몽고침입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산으로 피난을 왔는데, 늘 안개가 끼어 적군이 주민들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모두 부모산이 은혜로운 산이라는 의미에서 부모산이 됐다는 애기들이다.

부모산의 옛 이름이 아양산이 아닌 야양산이라는 견해도 있다. 부모산의 본래 이름이 아양산이 아닌 야양산으로 부르는 뜻은 부모산과'이음동의어'라는 것이다. 연화사 주지 보안스님은 야양산의 야(爺)와 양(孃)은 각각'아비'와 '어미'라는 뜻으로 부모산을 달리 표현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연화사 초입에 있는 마을이 본디 야양동으로 불리다 언제부턴가 아양동으로 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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