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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산성(사적 제216호)은 칠곡군 동명면과 가산면의 경계에 위치한 가산의 해발 901m에서 600m에 이르는 계곡을 이용하여 내성, 중성, 외성을 쌓은 산성이다.
조선 인조대에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부임한 이명웅(李命雄)이 가산의 지리적 중요성을 아뢰어 성을 쌓기 시작하여 외성(外城)을 쌓았고, 이후 여러 차례 수축(修築)이 되었으며 1741년(英祖 17) 관찰사 정익하의 장계에 의하여 중성(中城)이 완성되었다.
이 곳에는 천주사(天柱寺)와 보국사(寶國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곳에 승창미(僧倉米)를 보관하고 승려를 모집하여 궁술(弓術)을 연습시키고 승장(僧將)을 뽑아 이들로 하여금 포루(砲樓), 장대(將臺), 진남대(鎭南臺) 등을 수비시켰다 한다. 승창이 있었던 천주사에는 요사(寮舍)와 승창(僧倉)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으며,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의 군기를 보관했던 곳으로 전하는 보국사는 한국전쟁때 소실되고 지금은 건물지의 초석 일부와 기와편들 만이 남아 있다.
지세는 천주사지로부터 급경사를 이루며, 내성 동문에 이르면 약간 평탄해진다. 초루( 樓)는 없고 홍예문(虹霓門) 만이 남아있다. 앞쪽으로만 홍예를 만들고 안쪽으로는 판석을 가로놓았다. 나머지 홍예문이 대개 이 모양이나 외성의 남문만은 일반적인 홍예문의 법식을 따랐다. 내성은 1640년(仁祖 18)에 축성되기 시작하였다.
석성의 둘레는 4,710보이고 1,887첩(堞)이 설치되었다. 동, 서, 북의 문지가 있으며 8개의 암문이 있었다. 내성이 완성되면서 칠곡도호부가 설치되고 군위(軍威)·의흥(義興)·하양(河陽)·신령(新寧)이 예속되었다. 외성은 1700년(肅宗 26)에 만들어진 석축이다. 둘레는 602보이고 402첩이 생기며 중성문이 만들어졌다.
성내에는 객사(客舍), 인화관(人和館)을 비롯한 관아(官衙)와 군관청(軍官廳), 군기고(軍器庫), 보루(堡樓), 포루(砲樓), 장대(將臺)가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성의 목적이 방어를 위한 성곽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중요시설은 대개 내성 내에 위치하며 중성에는 사진(四鎭)의 창고가 있는데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한 비축미를 보관하던 곳으로 여겨진다.
이 성의 주 출입구는 외성남문인데, 1960년초의 집중폭우로 남문의 홍예는 반파되고 수구문과 성벽 일부가 유실되었으나 대부분의 성벽과 암문은 원형을 남기고 있다. 성내에는 건물은 남아있지 않고 건물지만이 남아 있다. 가산산성은 험한 자연지세를 이용한 조선 후기의 축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