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앞을 서쪽으로 흐르는 신탄(新灘)내 건너로 안산(案山)이 있고, 안산의 서쪽에서 남으로 돌아가면 석천정(石泉亭)과 삼계서원(三溪書院)이 있다.
신탄의 북쪽 끝에 정자를 중심으로 청암정(靑巖亭) 정침(正寢)과 권벌의 유적이 있고, 서북쪽에는 권씨의 동족부락이 연속되어 있다. 냇물을 끌어들여 청암정의 연못을 만들고, 정침과의 사이에는 별당인 제청(祭廳)과 사당(祠堂)이 나란히 서 있으며, 그 북서쪽 산모퉁이에는 두세 채의 초가가 딸려 있다.
권벌은 호를 충재 또는 훤정(萱亭)이라 하였는데 명종 즉위 후 원상(院相)이 되었으나, 이듬해 양재역(良才驛)의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구례(求體)와 삭주(朔川) 등으로 유배, 고초를 겪다가 삭주에서 죽었다. 선조 때 신원(伸寃)되어 좌의정에 추증, 삼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정침은 口자 모양의 기와집으로 앞뜰에 행랑과 대문을 세우고 흙담을 둘렀다. 서쪽 뜰 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은 신탄 상류 500 m 되는 곳에서 물을 끌어 올려 연못을 파놓은 데다 거북 모양의 바위와 조촐한 돌다리가 놓여 있어 옛 풍취를 한층 돋우어 준다. 뒷산의 동북 모퉁이에 서설당(瑞雪堂)이 있고, 시냇물 상류에서 하류의 석천정까지는 충재공의 유운(遺韻)을 전하는 정자(亭子)가 연이어져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526년(중종 21)에 청암정이 조성된 뒤, 그 아래에 있는 석천정은 충재의 아들 동보공(東輔公)이 지은 것으로, 약 500년이 지난 오늘날 당초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당 정침의 소박하고 간결한 수법은 물론, 청암정은 조선 전기의 원지(園池)로서, 따로 별당을 갖추고 방곽(方郭)의 돌담을 둘러쳤으며 초가가 딸려 있는데, 정내(亭內)에는 ‘靑巖水石’이라 새긴 허목(許穆)이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어 옛날 시골 연못의 한 모습을 오늘에까지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