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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정신이 살아있는 과천향교.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과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창건되었으나 터가 좋지 않아 등과유생이 없다는 이유로 숙종 16년(1690)에 현재 위치로 이전ㆍ개축되었다. 한 때 시흥군에 포함되어(1959) 시흥향교로 불리다가 1966년 성균관의 승인에 의해 과천향교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과천향교는 전학후묘의 배치에 딸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이 앞쪽에 있고, 문묘 (대성전)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과 우리나라 유학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 (제사의 높임말)하는 곳으로 봄 (음력2월), 가을 (음력8월) 초정일에 지내는 석전제와 매월 초하루 (음력 첫째날), 보름에 재는 삭망분향례가 있다.
관람포인트인 향교 계단은 보통 3줄로 되어 있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되, 계단에 오를 때는 오른 쪽, 내려올 때는 왼쪽을 이용하는 것이 예의이다. 중앙계단은 신(神)의 계단이므로 함부로 오르내리면 안 된다.
향교는 고려시대 이후에 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유학이라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지방에 세운 일종의 학교라고 할 수 있다.
과천향교는 조선 1대 왕인 태조 7년 (1398년)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본래의 위치는 과천관아 동북 2리 (갈현동 부근이라 추측함)에 있었으나, 향교의 터가 좋지않아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학생이 없고 벼슬을 하는 인재가 나오지 않자 숙종 16년 (1696년)에 당시 과천현감 황이명이 과천관아 서쪽 2리인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1944년 일본 강점기에 안산향교와 시흥향교가 과천향교에 합쳐지고 1959년 과천향교의 이름이 시흥향교로 바뀌었다가 1996년 본래의 이름인 과천향교로 바뀌었다. (1914년부터 과천은 시흥군 과천면이었다.)
향교는 전학후묘(前學後廟)라고 하여 앞쪽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명륜당이있고, 뒤쪽은 공자를 비롯한 25명의 훌륭한 학자들의 정신을 기리는 장소인 대성전이 있다.
과천향교에는 홍살문, 외삼문 (향교에 들어가는 문. 명륜당 앞에 있음), 내삼문 (명륜당과 대성전을 경계짓는 문), 수복가 (제사를 맡아보는 사람이 거처하는 집) 등이 있고 옮기기 이전의 향교에는 사직각 (토신과 곡신에게 제사제내는 곳), 동제 (양반 자녀들이 머무는 곳), 서제 (평민의자식이 거처하는 곳) 가 있었다. |